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엘리의 편지 · 2026년 6월 13일

식어 버린 차

식은 차와 시끄러운 머릿속, 그리고 자기에게 다정해지는 일에 관하여.

친구에게,

그러니까… 또 그랬어요.

차를 한 잔 끓이고, 폭신하게 자리를 잡고, 일기장을 펴고 앉았다가, 차를 완전히 잊어버렸어요. 생각났을 땐 이미 식어 있었죠. 또요. ☕️

인정하고 싶은 것보다 훨씬 자주 이래요. 작은 생각 하나에 정신이 팔리고, 또 하나에 팔리고, 그러다 보면 차는 식어 있고 저는 그냥 앉아서 아무것도 아닌 걸 멍하니 보고 있어요. 이상한 애처럼요.

아주 사소한 일인데, 삶의 다른 자리에서도 제가 얼마나 자주 이러는지 생각하게 돼요. 저를 위해 좋은 걸 하나 마련해 놓고 — 조용한 순간이나 작은 즐거움이나 약간의 평온 같은 걸요 — 그러고는 제 머릿속에 빠져서 그걸 통째로 놓쳐 버리는 거죠.

좋은 걸 원하지 않아서는 아닌 것 같아요. 제 머리가, 지금 하고 있는 이 생각이 내가 만들어 놓은 순간을 실제로 누리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저를 설득하는 데 아주 능해서 그런 것 같아요.

솔직히 좀 무례하죠.

제가 이럴 때 알아차리는 걸 조금씩 잘해 보려고 해요. “나를 고쳐야 해” 같은 마음이 아니라, 그보다는… “엘리야, 차 또 식는다. 잠깐 여기로 돌아와 볼래?” 같은 마음으로요.

정말 작고 시시한 일이에요. 그런데 가장 작은 습관이 우리가 스스로를 어떻게 대하는지를 가장 많이 말해 줄 때가 있는 것 같아요.

아무튼 차는 다시 데웠어요. 일단은요. 이번엔 얼마나 따뜻하게 남아 있을지 두고 봐야죠. 😅

요즘 당신의 차도(커피든, 무엇이든) 식어 버렸다면, 그 일로 스스로에게 다정하시면 좋겠어요. 어떤 날은 머리가 그냥 유난히 시끄러운 거예요. 우리가 뭘 잘못하고 있다는 뜻은 아니에요.

다음에 또 만나요, 엘리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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